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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617~686)는 신라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 화랑으로 활동했습니다. '화랑'은 왕과 귀족의 자제들로 이루어진 청소년 심신 수련 조직인데, 원효는 뛰어난 기억력과 총명함으로 집안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살아야 할 이유와 목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원효는 출가하여 스님이 되고자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원효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말렸으나, 원효는 형이 있으니 자신의 뜻을 들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결국 집안의 허락을 받은 후 원효는 스님이 되어 여러 절을 다니며 부처의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원효는 그런 시간을 통해 불교를 어느 정도 알 것 같았지만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불교를 전해 준 당나라로 가서 더 공부해야겠어."
원효는 44세 때인 661년에 의상(625~702)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의 길을 떠났습니다. 33세 때 의상과 함께 걸어서 당나라로 가던 도중 요동 근처에서 고구려 국경 경비대에게 붙잡혔다 풀려난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뱃길응 택했습니다.
원효와 의상은 걷고 또 걸어서 당항성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당항성은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산성으로, 신라 시대에는 서해를 통하여 중국과 교통하는 출입구이자 중요한 무역항이었습니다. 원효와 의상은 이곳에서 배를 타고 당나라로 건너갈 계획이었습니다.
"하룻밤 자고 가세."
원효와 의상은 밤이 깊어지자 산골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날 밤 원효는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찾았습니다. 원효는 손으로 더듬어서 바가지를 찾았고 거기에 담겨 있는 물을 맛있게 마셨습니다.
"물이 참 달고 시원하구나."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원효는 바가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이 잠잔 곳은 무덤 옆이었고, 바가지의 정체는 햐골아었기 때문입니다.
"우엑!"
원효는 더러운 물이라는 생각에 급히 토하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똑같은 물인데 한때는 맛있다고 느끼고 지금은 더럽다고 생각하다니••••••. 깨끗함과 더러움이 내 마음에 달려 있구나!'
원효는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일체유심조'는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불교 《화엄경》의 핵심 사상입니다. 이날 원효는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적극적으로 불교를 보급했습니다. 원효는 분황사에 있으면서 《화엄경소》를 지어 간행하는 한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나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만 외우면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원효는 글을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녔습니다.
🎵모든 일에 거리낌 없는 사람이라야 살아서든 죽어서든 편안함을 얻으리라.🎵
불교 경전에 있는 가르침을 노랫말에 담은 이른바 <무애가>입니다. '없을 무, 거리낄 애, 노래 가'라는 문자 그대로 뭔가에 얽매이지 않고 사는 게 불교 진리임을 강조한 노래이지요.
원효의 노력 덕분에 신라의 많은 사람이 부처를 믿고 나무아미타불을 외쳤으니, 작은 깨우침이 큰 파장을 일으킨 셈입니다. 오늘날 원효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불교 사상가이자 실천적 종교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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