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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미안하오. 그러나 우리의 운명이니 받아들이시오"
서기 660년 7월 초, 백제의 계백 장군은 출정에 앞서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칼로 베어 죽였습니다. 백제 군사보다 열 배 이상 되는 신라 군대에 맞서기 위해서는 죽음을 무릅써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계백은 황산벌에 진영을 갖추고 5000 결사대에게 말했습니다.
"월나라 왕 구천은 5000 군사만으로 오나라 70만 군사를 격파한 일이 있노라. 우리도 용기를 다해 싸우면 반드시 이길 것이다!"
7월 9일, 신라 5만 대군이 황산벌에 도착함에 따라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백제는 수적으로 매우 불리했지만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하여 신라에게 밀리지 않았습니다. 이틀에 걸쳐 네 차례 큰 싸움이 벌어졌으나 백제가 모두 이겼습니다.
그러자 신라군 지휘부에서 병사들 사기를 드높이고자 장수 김유신의 조카 반굴을 전쟁터로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반굴은 싸우다 죽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좌장군 김품일의 아들 관창이 자진하여 백제군 진영으로 돌격했습니다.
"죽이기에는 너무 어리구나!"
계백은 사로잡은 관창을 신라군 진영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려난 관창은 다시 백제군 진영으로 쳐들어갔고, 계백은 그 관창을 마지못해 죽였습니다. 관창의 돌진은 무모해 보이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15세 소년 관창의 죽음은 신라군의 감정을 크게 자극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부끄럽지 않게 하자!"
분노한 신라군은 총공세를 펼쳤으며 백제군은 결국 패했고 계백은 전사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당나라 수군이 협공을 해 왔습니다. 백제는 대항할 힘을 잃었고 별수 없이 의자왕은 항복했습니다. 이로써 백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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