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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을지문덕의 살수 대첩

01_12song 2020. 3. 8. 13:58

"지금 천하가 모두 우리를 받드는데, 오직 고구려만이 그렇지 않다. 더구나 고구려 백성들은 호족(지방 세력가)들의 탄압에 신음하고 대가 없는 힘든 일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고 있다. 내가 친히 전군을 통솔하여 하늘의 뜻에 따라 나아갈 것이다."
서기 612년(고구려 영양왕 23)에 수나라 양제는 위와 같은 명분을 내걸고 고구려 정벌에 나섰습니다. 수나라는 고구려 정치에 간섭할 위치에 있지 않건만 천하 통일의 야욕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말이었지요.
수양제는 전투군 100여만 명에, 군량 보급 부대 200만 명이 넘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정군을 이끌었습니다. 워낙 병력이 많은 탓에 날마다 한 부대씩 40일 동안 출발해야 했습니다. 수양제는 따로 수군 10만 명을 3000척에 이르는 배에 태워 보내며 평양성에서 만나자고 약속했습니다.
"큰일이로군. 정면 대결을 피하고 기습 공격 작전을 펴야겠어"
수적으로 불리한 고구려는 일단 성을 굳게 지키면서 갑자기 공격했다 달아나는 전략을 준비했습니다. 수양제는 대군을 이끌긴 했으나 고구려의 성을 하나도 공략하지 못했습니다. 고구려군이 성문을 꽉 잠근 채 철통같이 버텼기 때문입니다. 그 바람에 수양제는 섣불리 고구려 수도로 깊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성으루점령하지 못한 채 지나칠 경우 뒤에서 갑작스럽게 공격받을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지요. 수양데은 급한 마음에 우문술과 우중문 등에서 별동댜 30만 명을 주어 평샹성을 공격하라고 명했습니다. 이에 고구려 장군 을지문덕은 살수(지금의 청천강)의 상류에 둑을 쌓아 물을 모아 두었다가 수나라 군대가 강을 건널 때 갑자기 흘려보내 전부 몰살시켰습니다. 수나라 입장에서는 2700명만이 겨우 목숨을 건진 참패였고, 고구려 입장에서는 큰 피해 없이 승리한 그야말로 대승이었습니다. 수양제는 별수 없이 물러갔고, 을지문덕은 영웅으로 존경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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